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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4 08:07
15년 전,
93년은 첫 봄바람 같은 해였다.

지금은 군정이라는 말이 남의 나라 일처럼 멀게만 느껴지지만,
그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군인이 통치하던 나라였고, 당시 국민의 염원은 “군정종식”이었다. 그러던 것을 15년 전 김영상 대통령이 이 꿈을 달성하고 문민시대를 열었다.
(문민시대가 열리자, 국민의 염원은 금융실명제5·18특별법 제정으로 바뀌었다.)

미국에서는 페르시아 전쟁(작전명 사막의 폭풍 Desert Storm, 후에 걸프전으로 이름이 바뀜)으로 유명한 현직 부시 대통령을 꺾고 (빌)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었다. 클린턴의 선거 캠프 구호는 문제는 경제야, 이 멍청아!(It's the economy, stupid!)였다.

바야흐로 새 시대가 열리는 것 같았다.

그 전 해 혜성같이 화려하게 등장한 서태지는 하여가로 여전히 인기를 끌면서 문화 대통령이 되었고, 김건모, 김원준과 같은 가수들도 등장하면서 지금은 흔해빠진 새내기라는 참신한 말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주라기 공원이 개봉하면서 문화가 새로운 경제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것만 같았고, 세계화라는 이름아래 전세계가 눈앞에 가까이 올 것만 같았다. 대학생들은 배낭여행을 시작했다. 커피숍 벽면이 유리창으로 만들어져 안이 훤이 들여다 보이는 자뎅(Jardin), 폴(Fall)과 같은 커피숍이 생기기 시작했고, 부산에만 있다고 들었던 노래방도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해 여름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심어 주겠다는 취지로 '93 대전 엑스포가 개최됐다.

그러나 대전 액스포는, 컴패니언 모델이라는 생소한 외래어를 우리말로 바꾼다면서 도우미라는 또다른 생소한 신조어를 만들어내고서는 끝나자마자 잊혀져 버렸다. 참고로 대전 엑스포 조직위원회(위원장 오명)에서는 자신들이 만든 도우미라는 단어가 도움을 주는 아름다운 여자의 줄임말이라는 어이없는 해석을 내놨다.


그해 5월1일 연세대학교에서는 건국 이래 최초로 노동절 행사가 합법적으로 진행됐다. 경찰이 처음으로 노동절 행사를 불법집회로 규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연세대에서 여의도 인근까지 길거리 행진을 지원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구국의 강철대오라고 불렀던 전대협이 해산하고, 5월 고려대학교에서는 불패의 애국대오라는 한총련이 출범했다. 한총련 출범 당시 고려대학교에는 전국에서 10만명이 넘는 대학생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전국민적인 참여열기가 뜨겁다는 촛불집회도 아직 전국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모인 사람을 다 합쳐도 10만명을 넘어본 적이 없다는 걸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 숫자다.


그해 11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로 유명한 성철스님이 열반에 들어 잔잔한 파문이 있었으나, 그해 12월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쌀시장 개방이 결정되면서 93년의 대미를 장식했다.

클린턴의 선거 공약이 문제는 경제야, 이 멍청아!(It's the economy, stupid!)였다면 김영삼의 선거공약은 대통령직을 걸고 쌀시장 개방은 막겠다.였다. 그런데 쌀 시장이 개방되었다. 일순간 우리나라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것 같은 분위기에 휩싸였다. 지금같으면 '대통령직을 걸었으니 넌 탄핵이다'라고 하겠지만 당시에는 탄핵이란 말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단어이고 그 당시에는 이를 대신하여 하야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하야는 이승만 대통령 때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쌀시장 개방에 합의한 직후,
바로 다음날 대통령은 초췌한 느낌을 최대한 살리는 분장을 하고 TV 앞에 서서 대국민 사과를 시작했고,
허신행 당시 농림수산부 장관은 쌀시장 개방의 책임을 물어 바로 경질됐다.
국민들은 곧바로 거리시위에 나섰고,
한쪽에서는 관세화와 관세화 유예의 의미, 최소시장접근이란 무엇인가? 등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허신행이라는 이름은 그 이후 내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내 기억에 따뜻한 봄바람같던 시절 갑자기 불어닥친 쌀시장 개방의 인상이 너무 강해서 그럴 수도 있고, 그해 겨울에는 길거리에 나가 사진을 참 많이 찍었기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는 것있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해 겨울은 연일 계속되는 시위에 사진을 찍으면서 처음보는 사람에게 정면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일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된 시기였다. 그리고 정말 공부도 많이 했던 시기였다.

그리고 지금,
잃어버린 기억을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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